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어떻게 만들까? (흙막이, 탑다운공법)
새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지상에서는 자동차를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잔디밭과 산책로, 놀이터가 이어지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납니다.
지하 2층, 3층까지 넓게 이어진 주차장입니다.
저도 이런 지하주차장을 걸어보면서 한 번쯤 궁금했습니다. 완성된 모습만 보면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를 땅속에 넣어놓은 것 같은데, 실제 공사에서는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파낼까요?
공사 순서를 따라가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깊은 지하공사는 무작정 땅부터 파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1단계. 땅을 파기 전에 주변부터 막는다
운동장처럼 주변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면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비스듬하게 만들면서 굴착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부지 경계 가까이에 도로나 다른 건물, 각종 시설물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하주차장을 만들겠다고 주변 땅까지 넓게 파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깊은 굴착에서는 먼저 굴착면 주변의 흙을 지지할 구조가 필요합니다. 흔히 말하는 흙막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흙막이는 하나의 공법 이름이 아닙니다.
현장의 지반과 지하수, 굴착 깊이, 주변 건물과의 거리 등에 따라 엄지말뚝과 토류판을 이용하기도 하고, 연속벽이나 다양한 형태의 벽체를 만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땅에 구멍을 뚫고 철근콘크리트 벽을 먼저 만드는 것이 흙막이공법”이라고 하나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공법은 달라도 목적은 비슷합니다. 굴착하면서 주변 지반이 무너져 들어오는 것을 제어하고 안전하게 지하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2단계. 조금 파고, 버티고, 다시 내려간다
흙막이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안의 흙을 한 번에 전부 퍼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굴착이 깊어질수록 흙막이에는 주변 지반과 지하수 등에 의한 힘이 작용합니다. 아무런 지지 없이 깊게 내려가면 흙막이 자체가 변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사 현장에서는 굴착 단계에 맞춰 흙막이를 지지하는 구조를 설치합니다.
현장 안쪽을 가로지르는 강재 버팀보를 사용할 수도 있고, 조건이 허용된다면 흙막이 뒤쪽 지반에 앵커를 정착시키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사장을 지나가다 보면 거대한 철골이 구덩이 안을 가로질러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이것이 완성된 건물의 구조물이 아니라 굴착하는 동안 흙막이를 지지하기 위한 가설구조물인 경우도 있습니다.
즉 지하주차장은 단순히 큰 구덩이를 파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파고 → 지지하고 → 다시 파는 과정을 계획된 순서에 따라 반복하면서 지하로 내려갑니다.
3단계. 어떤 현장은 위쪽 바닥을 먼저 만든다
그런데 현장에 따라서는 조금 이상한 장면도 나타납니다.
아직 아래쪽 흙을 다 파내지도 않았는데 위쪽에 콘크리트 슬래브가 먼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탑다운(Top-Down) 공법입니다.
일반적인 굴착에서는 필요한 깊이까지 굴착한 뒤 아래쪽에서부터 기초와 지하 구조물을 만들어 올라오는 방법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탑다운은 순서를 달리합니다.
상부의 지하층 슬래브 등을 먼저 만들고, 만들어진 슬래브 아래의 흙을 다시 굴착해 다음 지하층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을 아래 방향으로 이어갑니다.
이때 먼저 만들어진 슬래브는 완성 후 주차장 바닥이나 구조체가 될 뿐 아니라 공사 중에는 흙막이벽을 지지하는 역할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현장 조건과 공사계획에 따라 지상 구조물 공사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도 탑다운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라고 해서 모두 탑다운으로 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굴착 깊이와 부지 조건, 주변 환경, 지반과 지하수, 공사계획 등을 고려해 적합한 공법을 선택합니다.
4단계. 흙이 빠져나간 자리에 주차장이 생긴다
굴착이 진행되면서 우리가 완공 후 보게 될 지하 구조물도 하나씩 만들어집니다.
기초와 기둥, 벽체, 슬래브 등이 설계된 구조방식에 따라 연결되고, 그 사이에 자동차가 다닐 통로와 주차 공간이 생깁니다.
여기에 배수시설과 전기, 환기, 소방설비 같은 각종 설비가 더해집니다.
공사 중에는 흙과 굴착장비, 철골 버팀대가 뒤섞여 있던 공간이 완공될 무렵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지하주차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상당수의 과정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흙막이와 굴착 순서, 콘크리트 안쪽의 철근 배치, 지반 아래의 기초처럼 중요한 부분일수록 완공 후에는 마감과 구조물 뒤에 가려집니다.
완성된 주차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2023년 인천 검단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지하주차장 일부가 붕괴하면서 지하 구조물의 시공 품질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고는 지하를 깊게 팠기 때문에 발생한 것도, 탑다운공법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고조사에서는 무량판 구조의 기둥 주변에 필요한 전단보강근이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누락된 문제, 붕괴 구간의 콘크리트 강도 부족, 공사 과정에서 구조물 위에 계획보다 많은 하중이 더해진 문제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 참고: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2023년 조사 결과 발표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슬래브를 기둥이 직접 지지하는 구조방식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설계에 따라 기둥 주변에 집중되는 힘을 견디도록 필요한 보강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례가 흙막이나 탑다운을 설명해 주는 사고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하주차장을 만드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왜 각 단계의 설계와 시공, 품질관리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지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완성된 아파트에서 보는 것은 밝게 도색된 기둥과 천장, 주차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공간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주변의 흙을 붙잡고, 조금씩 땅을 파내고, 구조물을 만들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긴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하주차장은 거대한 구덩이를 한 번에 파서 만든 공간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도록 순서를 설계하면서 조금씩 땅속에 만들어낸 건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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