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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복합 지하 물탱크를 일부러 비워두는 이유 (유출 저감, 용적률 인센티브, 물순환 조례)

집을읽는사람 2026. 9. 23. 22:37

목차


    물탱크를 만들어 놓고 일부러 비워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울 건대입구역 옆 스타시티 지하에는 1,000톤짜리 공간 세 개가 나란히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설계부터 늘 비워두게 되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오히려 이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라는 것, 그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빗물 하나가 어떻게 도시의 룰을 바꿨는지까지 연결됩니다.

    주상복합 지하 물탱크를 비워두는 이유

    야구장이 사라지면 빗물은 어디로 가는가

    스타시티가 들어선 서울 광진구 자양동은 원래 대학교 야구장이었습니다. 한강 바로 위쪽, 비만 오면 장화 없이는 걷기 힘들었다는 낮은 땅이었죠. 그런데 이 자리에 58층짜리 주상복합 네 동, 1,000세대가 넘는 단지가 들어서기로 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건물만 바뀌는 게 아니었습니다. 비가 내린 뒤 물이 흘러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불투수면(impervious surface)입니다. 여기서 불투수면이란 지붕, 아스팔트, 콘크리트처럼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표면에서 그대로 흘러내리는 면적을 의미합니다. 잔디밭에 빗방울 열 개가 떨어지면 하나만 흘러내리지만, 콘크리트에 열 개가 떨어지면 아홉 개가 그대로 표면을 타고 낮은 쪽으로 달려갑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는 게 실감이 됐습니다. 야구장 하나가 콘크리트 단지로 바뀌면, 하수관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는 물의 양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 물은 단지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낮은 한강변 주택가로 흘러가죠. 구청이 긴장한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 동네 하수관은 10년에 한 번 오는 큰 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관이었습니다. 상식적인 해법은 관을 더 큰 걸로 갈아끼우는 것이었지만, 그러려면 동네 도로를 전부 파헤쳐야 했습니다. 단지 하나 때문에 동네 하수도를 다시 까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요약: 야구장이 대규모 콘크리트 단지로 바뀌면 불투수면이 늘어 빗물 유출량이 급증하고, 기존 하수관 용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관을 키우는 대신, 물을 붙잡는 발상

    서울대 한무영 교수가 자문을 맡으면서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설계도에는 지하 주차장이 3층까지만 있었는데, 교수는 네 동 중 한 동만 한 층을 더 파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지하 4층에 3,000톤짜리 방이 생겼습니다. 주차장 한 층 파는 값으로 동네 하수도 전체를 갈아 끼우는 비용을 대신한 셈이죠.

    이 방식을 저류(detention)라고 합니다. 저류란 집중호우 때 빗물을 일시적으로 가둬두었다가, 하수관의 부담이 줄어든 뒤에 천천히 내보내는 방식입니다. 물을 없애는 게 아니라, 물이 하수관으로 몰리는 타이밍을 늦추는 것입니다. 고속도로 진입 차량을 신호등으로 조절하는 램프 미터링과 원리가 같습니다.

    지붕 6,000㎡에 마당 45,000㎡, 합쳐서 5만㎡가 넘는 면적에 떨어진 빗물이 전부 이 방으로 모입니다. 축구장 일곱 개 면적의 빗물을 받아내는 겁니다. 덕분에 기존 하수관을 한 뼘도 건드리지 않고도 50년에 한 번 오는 비까지 버틸 수 있게 됐습니다. 관을 키운 게 아니라, 관으로 가는 물의 속도를 늦춘 겁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숫자의 대비였습니다. 건설사가 탱크에 쓴 돈은 5억 원이 채 안 됐습니다. 반면 구와 시가 하류의 홍수 시설을 새로 지었다면 그 비용은 비교가 안 될 규모였을 겁니다. 5억짜리 벽 두 개가 수백억짜리 인프라 공사를 대신한 것, 이게 이 설계가 논문 기준으로 전국 47개 도시에 퍼진 이유라고 봅니다(출처: 서울특별시).

    요약: 하수관 확장 대신 지하 저류 공간을 만들어 빗물의 유출 타이밍을 늦추는 방식으로, 훨씬 적은 비용에 더 큰 효과를 거뒀습니다.

    왜 3,000톤짜리 탱크를 굳이 세 칸으로 나눴는가

    여기서 진짜 머리 아픈 문제가 생깁니다. 홍수를 막으려면 탱크를 늘 비워둬야 합니다. 폭우가 오는 순간 3,000톤을 한꺼번에 받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비워두면 빗물을 한 방울도 못 씁니다. 반대로 채워두면 정작 폭우가 왔을 때 받을 자리가 없습니다. 비워도 문제, 채워도 문제인 상황이죠.

    탱크를 두 배로 키우면 해결되지 않냐고요? 제 생각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건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시점의 문제입니다. 6,000톤이 꽉 차 있으면 6,000톤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비가 언제 올지 모르는 한, 탱크가 아무리 커져도 비울 타이밍을 모르면 답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탱크를 키우는 대신 벽을 세워 칸을 나눴습니다. 3,000톤짜리 방에 벽 두 개를 세워 1,000톤짜리 칸 세 개로 나눈 것입니다. 벽 하나 세우는 데는 큰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선택이 날씨를 예측해야 하는 문제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세 칸의 역할 분담

    각 칸이 맡은 일은 명확하게 나뉩니다.

    • 첫째 칸 — 홍수 대비용. 늘 비워둡니다. 집중호우가 오는 순간 1,000톤을 받아낼 여유 공간이 항상 확보되어 있습니다.
    • 둘째 칸 — 빗물 이용용. 매일 꺼내 씁니다. 화장실, 단지 안 조경수, 분수와 실개천에 이 물이 들어갑니다. 문을 연 뒤 2년 동안 실제로 사용한 빗물이 26,000톤이었고, 잘 돌리면 연간 4만 톤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단지 수돗물 사용량의 20%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 셋째 칸 — 비상용. 손대지 않고 채워둡니다. 화재처럼 급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만 꺼냅니다.

    여기서 빗물이용시설이라는 개념이 하나 더 들어옵니다. 빗물이용시설이란 단순히 물을 저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모은 빗물을 실제로 재사용하는 설비를 의미합니다. 저류시설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라면, 빗물이용시설은 '저장한 물을 다시 쓰는' 것입니다. 스타시티의 둘째 칸이 정확히 이 역할을 합니다(출처: 서울특별시 물순환정책과).

    중력이 일을 다 해준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돗물은 멀리 있는 강에서 정수장을 거쳐 펌프로 밀어 올리는 물입니다. 지붕에 떨어진 빗물을 지하로 내려보내는 데는 그 힘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에너지 비용 면에서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요약: 하나의 탱크를 역할별로 세 칸으로 나누면 날씨 예측 없이도 홍수 대응과 빗물 활용, 비상 대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건설사가 선의로 이걸 만든 건 아닙니다

    제가 이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이 부분이었습니다. 건설사가 대체 왜 돈을 들여 이런 시설을 만들었을까요?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이어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구청이 조건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조건의 핵심은 용적률 인센티브였습니다. 용적률(Floor Area Ratio)이란 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로, 쉽게 말해 같은 땅에서 얼마나 많은 건축 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수치입니다. 58층짜리 네 동에서 용적률 3%는 이익으로 200억 원 가까이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건설사가 탱크에 쓴 돈은 5억 원이 채 안 됐으니, 계산은 누가 봐도 맞아떨어집니다.

    구청 입장에서도 셈이 섰습니다. 단지가 물을 안 잡으면 하류의 홍수 시설을 새로 지어야 했고, 그 비용은 5억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건설사는 층을 얻고, 구청은 공사비를 아끼고, 동네는 침수를 피했습니다. 세 쪽이 전부 이익을 본 구조입니다.

    이 계산이 서울 전체로 확산됩니다. 서울시는 2005년 빗물 관리 조례를 만들었고, 2013년에는 이름을 물순환 회복 기본 조례로 바꾸며 공공 건물에는 설치를 의무화했습니다. 그 공청회의 좌장이 스타시티를 설계한 한무영 교수였습니다. 이 설계는 2008년 12월 국제 전문지 표지에 실렸고, 도쿄에서 발표를 들은 영국 교수가 지금도 강의에서 이 사례를 인용한다고 합니다. 건물이 준공된 것이 2007년 초이니, 이제 거의 20년 가까이 된 설계가 여전히 현역입니다.

    요약: 용적률 인센티브라는 이해관계 설계 덕분에 건설사, 구청, 지역 주민 세 쪽 모두 이익을 얻었고, 이 구조가 서울 전체 물순환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타시티 빗물탱크는 비가 오면 항상 가득 차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세 칸 중 첫째 칸은 설계부터 늘 비워두게 되어 있습니다. 집중호우가 왔을 때 즉시 물을 받을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항상 확보해두는 것이 이 시스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는 것이 오작동이 아니라 정상 상태입니다.

     

    Q. 빗물저류시설과 빗물이용시설, 다른 건가요?

    A. 목적이 다릅니다. 저류시설은 폭우 때 빗물을 일시 가둬두어 하수관으로 유입되는 속도를 늦추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빗물이용시설은 저장한 물을 화장실, 조경 등에 실제로 재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스타시티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두 기능을 칸을 나눠 동시에 구현한 사례입니다.

     

    Q. 모아둔 빗물을 마실 수도 있나요?

    A. 스타시티 방식의 빗물이용시설에서 저장된 빗물은 음용수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화장실 용수, 조경수, 분수처럼 정수 처리가 필요 없는 곳에 활용합니다. 정수장을 거친 수돗물을 변기 물 내리는 데 쓰는 것보다, 빗물을 그 용도에 맞게 쓰는 것이 자원 효율 면에서 훨씬 합리적입니다.

     

    Q. 건설사가 용적률 인센티브 없이도 이런 시설을 만들까요?

    A. 제 생각으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스타시티 사례가 전국으로 퍼진 것도 결국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구조를 먼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서울시 물순환 회복 기본 조례가 공공건물에 설치를 의무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설계는 선의만으로 확산되지 않습니다.

    결론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제가 기억에 남은 건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비울 칸과 채울 칸을 따로 뒀다는 발상이었습니다. 문제를 크기로 풀려다 막힌 자리에서, 역할을 나누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은 방식이 유독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건대입구 쪽을 지나게 되면 58층짜리 건물 네 동 아래에 비어 있는 1,000톤짜리 공간이 지금 이 순간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빗물 관리나 도시 물순환에 관심이 생겼다면, 서울시 물순환 정책 자료를 찾아보시는 것도 이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