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배관에 은색 가시가 붙어 있는 이유 (방범커버, 수직배관)
건물 외벽을 따라 올라가는 노란 도시가스 배관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물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관을 감싸고 있는 은색 덮개인데 표면에는 뾰족한 가시가 촘촘하게 나 있습니다.
더 이상한 건 위치입니다. 배관 전체를 감싸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접근하기 쉬운 아래쪽에만 설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가 새는 것을 막는 장치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시는 무엇을 막고 있는 걸까요?
가까이서 보면 배관보다 손이 먼저 보인다
외벽의 수직배관을 가스가 흐르는 관이라고만 생각하면 가시덮개의 용도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는 배관을 사람이 잡는다고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세로로 길게 이어진 배관은 손으로 움켜쥐기 쉽고, 벽에 배관을 고정한 부분이나 주변 구조물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몸을 지탱하는 데 이용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특히 저층의 창문이나 발코니와 가까운 곳에 이런 수직 구조물이 있다면 외부 침입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 외벽에는 애초에 사람이 타고 오를 수 있는 요소를 줄이는 방범 개념이 적용됩니다.

은색 가시의 역할은 가스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은색 가시덮개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이런 형태의 덮개는 배관의 가스 누출을 막거나 배관 내부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배관을 손으로 잡거나 발을 걸어 타고 올라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방범 목적의 구조물입니다.
표면을 매끈하게 감싸거나 돌출물을 두는 등 형태는 달라질 수 있고, 실제 적용방법도 건물과 설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골목에서 흔히 보는 스테인리스 가시덮개를 모든 도시가스 배관에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하나의 법정 부품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시를 달아야 한다’가 아니라 ‘배관을 타고 침입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시는 왜 아래쪽에만 있을까
이제 처음 봤던 위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범죄예방 건축기준은 적용대상 건축물의 외벽에 수직배관이나 냉난방설비 등을 설치할 때, 지표면에서 지상 2층으로 타고 올라가거나 옥상에서 최상층으로 타고 내려올 수 없도록 계획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배관 전체를 위험한 물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건물에 처음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끊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손을 뻗어 잡기 쉬운 구간에 방범커버가 집중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옥상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구조라면 위쪽도 침입 경로가 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합니다.
즉 “가시는 무조건 2층까지만 설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준이 요구하는 것은 특정 길이의 가시덮개가 아니라 침입에 이용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모든 노란 배관에 가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를 걷다 보면 같은 노란 배관인데 어떤 건물에는 가시덮개가 있고 어떤 건물에는 없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건물이 지어진 시기와 당시 적용된 기준이 다를 수도 있고, 배관 주변에 창문이나 발판처럼 침입에 이용될 만한 구조가 있는지에 따라서도 대응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 기준 역시 모든 도시가스 배관에 똑같은 모양의 가시덮개를 설치하라고 규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자체에서 신축 건축물의 도시가스 배관 주변에 방범커버나 가시덮개 같은 시설을 적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배관을 타고 창문 등에 접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한 방범 대책의 한 형태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에 가시덮개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법을 위반한 배관이라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결국 제가 처음 봤던 은색 가시는 가스 자체를 위한 장치가 아니었습니다.
노란 배관을 ‘가스가 지나가는 관’이 아니라 ‘사람이 잡고 올라갈 수도 있는 건물 외벽의 수직 구조물’로 한 번 더 바라본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골목에서 이런 가시를 발견하면 배관 전체보다 가시가 시작되고 끝나는 위치를 한번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왜 하필 그 자리에 설치했는지가 전보다 조금 다르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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